12A*7 계열 진공관
1. 작은 크기에 두 개의 3극관이 들어 있는 쌍 3극관
널리 사용되는 3극 전압 증폭관에 대해 살펴보자. 옛날에는 실로 수많은 진공관들이 있었지만, 요즘 프리앰프나 파워 앰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3극관들은 구하기 쉽고 현재에도 새 제품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몇몇 진공관에 국한되고 있다.
엄지 손가락 정도의 작은 크기 때문에 ‘미니어처’로 불리는 진공관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단연 12A*7
시리즈다. 그 중에서도 12AX7, 12AT7, 12AU7 삼형제가 대표적이다. - 삼극관의 구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류 점화할 때 발생하는 험을 억제하기 위해 캐소드와 필라멘트가 분리된 방열관으로 제작되었다.
진공관의 미국식 형번에서 앞에 나오는 숫자는 히터의 전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A3는 2.5V, 5AR4는 5V, 6SN7은 6V(정확하게는 6.3V)가 된다. 12A*7
도 12V(정확하게는 12.6V)의 히터 전압을 갖는다.
그런데 12A*7
은 하나의 진공관 안에 두 개의 3극관이 들어 있는 ‘쌍3극관’이다. 플레이트, 캐소드, 컨트롤 그리드 뿐만 아니라, 히터도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 12A*7
에 들어있는 3극관 개개의 히터 전압은 일반적인 진공관처럼 6.3V인데, 두 개의 히터를 별개로 점화시킬 수 있어야 하므로 핀이 세 개 나와 있다.
즉 4번과 9번, 5번과 9번에 6.3V 전력을 공급하면 각각의 히터를 점화시킬 수 있다. 한편 9번 핀을 사용하지 않고 4번과 5번 핀에 12.6V 전력을 공급하면 두 개의 히터가 직렬로 연결되어 함께 점화된다. 마찬가지로 4, 5번을 묶고 9번 사이에 6.3V 전력을 공급하면 두 개의 히터가 병렬로 연결되어 함께 점화된다. 히터의 소비 전력은 약 1.8W, 즉 12V를 공급할 경우에는 0.15A, 6V 공급시에는 0.3A의 전류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한편 12A*7
계열은 방열관이므로 교류 점화하더라도 험의 문제는 없지만, 소비 전력이 작으므로 대개 직류 점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엄밀히는 12.6V를 공급해야 하지만, 보통 7812와 같은 레귤레이터로 간단하게 12V 직류를 얻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12V를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실용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민감한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플레이트 전압 뿐아니라) 히터 전압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서 소리가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전압이 높을수록 단단하고 선명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쌍3극관이기에 두 채널 분을 하나로 사용할 수도 있고 두 단계의 일을 하나의 진공관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개의 진공관이 하나의 몸체에 들어 있기에, 두 진공관의 동작 상황(플레이트 전압이나 캐소드 바이어스 등)이 판이하게 다르면 동작이 불안정해지거나 이에 따른 수명 저하, 또는 노이즈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전압 증폭이나 위상반전 등 용도에 따라, 쌍3극관의 절반은 좌측 채널, 나머지 절반은 우측 채널용으로 나눠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2. 증폭도가 높은 작은 거인 12AX7
12AX7은 12A*7
계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진공관일 것이다. 진공관 특유의 부드러움을 지녔으며 따듯하고 윤기 있는 소리로 인기가 높다. 전압 증폭관으로서 두 개의 3극관 중에서 하나만으로 70가량의 가장 높은 증폭도(μ)를 갖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증폭도가 높은 만큼 포노 앰프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데, 증폭도가 높은 대신 내부 임피던스가 높아서(전류를 많이 흘리지 못해서) 12AX7에서 다른 진공관을 거치지 않고 다른 회로와 직결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12AX7의 뒷단에 12AU7이 약방의 감초처럼(캐소드 팔로워 회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명기로 손꼽히는 마란츠 7은 포노단에 12AX7 세 개, 라인단에도 12AX7 세 개 만을 사용하고 있고 , EAR의 V20 인티앰프는 (임피던스가 높은) 12AX7을 심지어 출력관으로 사용하기도 하니, 오디오 회로라는 것은 설계자의 창의성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나보다.
12AX7의 최고봉 텔레풍켄 ECC803S. ECC83의 프리미엄 버전 ECC803 중에서도 선별된 특별한 것들이다. 명기 마란츠 7에도 텔레풍켄의 제품이 장착되어 있다.
12AX7의 유럽식 형번은 ECC83이다. 고신뢰관으로 E83CC, ECC803(S)가 있는데, 텔레풍켄 제품이 최고로 여겨진다. 특히 ECC803은 텔레풍켄에서 만든 프리미엄 급 진공관으로, 그 중에서 선별된 것은 ECC803S의 형번을 갖는다.
진공관의 바닥에 텔레풍켄 마크의 사각 모양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각인관’이라고 하여 더욱 특별하게 취급받는다. 텔레풍켄의 소리는 12A*7
계열 모두 맑고 투명하며 선명한 느낌을 준다. 다만, 소리가 센 경향도 있어서 원래부터 소리가 선명하고 고역이 강조되어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으니, 텔레풍켄이라고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
널리 사용된 진공관인 만큼 다양한 메이커에서 좋은 제품들을 만들었는데 뮬라드(Mullard), 암페렉스(Amperex), 필립스 미니와트(Philips Miniwatt), RCA, 퉁솔(Tungsol) 등은 인기가 높지만 가격이 높은 편이다.
미국산으로는 12AX7을 소폭 변경한 저잡음관으로 12AX7A, 12AX7T 등이 있고 특히 7025는 오디오용 저잡음관으로 제작되었고, 골드핀을 갖는 7729는 CBS에서 사용할 용도로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군용으로 납품되던 고신뢰관은 5751, 통신 장비에 사용된 것은 6681의 형번을 갖고 있다. 한편 실바니아에서 만든 12AD7은 12AX7과 같은 특성의 저잡음관으로 히터 용량만 약간 크다.
RCA의 7025. 7025는 12AX7을 오디오용 저잡음관으로 제작한 고신뢰관이다.
신관으로는 유고의 EI에서 만든 제품이 가격대 성능비가 높고 ‘EI Elite’로 발매된 제품이 텔레풍켄의 소리와 닮은 맑은 소리를 낸다. 풀뮤직, 테슬라, 일렉트로하모닉스, 소브텍 등등. 중국, 러시아 동유럽 등지에서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고 골든 드래곤, 램 랩스, 골드 에어로, 엔틱 셀렉션 등의 회사들은 이들 진공관들을 선별하여 자사 상표를 부착하고 있다. 군용관들의 재고도 상당수 남아 있으므로 부담되지 않는 가격대에서 다양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3. 쭉쭉 뻗는 광대역의 음, 12AT7
12AX7과 유사한 쌍삼극관으로 핀 배치나 구조, 히터 전력 등이 동일하다. 다만 증폭도(μ)가 55~60으로 12AX7보다 낮다. 그래서 12AX7 자리에 12AT7을 끼우면 소리가 약간 작아지는 대신, 고역이 또렷해지거나 섬세해지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물론 제작사가 12AX7을 그 자리에 사용한 이유가 있을 테니, 굳이 12AT7로 교체해볼 이유는 없겠지만, 호기심 많은 애호가라면 이를 통해 소리의 변화를 즐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원래 오디오보다는 TV나 FM 라디오 등의 고주파 회로에 자주 사용될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우수한 고주파 특성을 눈여겨 본 앰프 제작사들이 오디오 시장에 끌어들였다. 다만 흔히 이야기하는 ‘소리의 직진성’이 좋기 때문인지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은 덜하다. 제품의 편차가 큰 편인데, 좋지 못한 제품의 경우 딱딱하거나 푸석푸석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럽식 형번은 ECC81이다. 고신뢰관으로 E81CC, ECC801(S)가 있고, 역시 텔레풍켄, 특히 각인관의 인기가 최고다. 이외에 암페렉스, 뮬라드, RCA, 필립스 미니와트 등이 손꼽힌다.
군용은 6201, 통신 장비용은 6679의 형번을 가지며 CBS 방송국용 골드핀 버전은 7728이다. 12AX7과 마찬가지로 소브텍, 슈광 EI, 텅스램 등 다양한 메이커에서 신관을 제작하고 있으며, 엔틱 셀렉션, 골든 드래곤과 같이 선별관을 취급하는 회사도 많으므로 선택의 폭이 넓다. 한편 12AZ7이라는 진공관도 볼 수 있는데, 이는 12AT7과 거의 동일한 특성에 히터 용량만 다르다. 매킨토시의 275 앰프에 사용된 바 있다.
매킨토시 신형 MC275. 오리지널 제품은 12AX7외에 12BH7과 12AZ7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몇 차례 신형이 발매되면서 두 진공관을 12AT7로 통일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4.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12AU7
12AU7, 12AT7, 12AX7은 모두 갖은 핀배열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다만 증폭도를 다르게 하기 위해 전극의 간격과 그리드의 피치를 달리 한 것이다. 그 중 12AU7은 12A*7
계열에서 증폭도가 12~15로 가장 낮다. 그래서 12AX7 자리 또는 12AT7의 자리에 12AU7을 꼽으면 소리는 확연히 줄어들지만 경우에 따라 쏘는 느낌이나 뻗침이 줄어든 편안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12AU7의 소리는 대체로 온화하고 편안하며 치우침이 없이 단정하다. 텔레풍켄의 제품들은 대체로 이런 특색에 맑고 선명함이 가미된다.
12AU7은 증폭도가 낮은 대신 내부 임피던스가 낮아서(전류를 많이 흘릴 수 있어서) 12AX7이나 12AT7의 뒷단에서 다음 회로로 연결할 때 임피던스를 낮출(전류 공급 능력을 높일) 용도 - 캐소드 팔로워 회로에 많이 사용된다. 또한 높은 증폭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라인 전용 프리앰프에 널리 사용되며, 파워 앰프에서는 전압 증폭을 하는 초단보다 드라이브 단 또는 위상 반전단에 많이 사용된다.
유럽 형번은 ECC82. 12AX7이나 12AT7처럼 텔레풍켄의 제품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E82CC, ECC802(S)가 프리미엄 관으로 명성이 높다. 군용 고신뢰관은 5814/6189, 통신 장비용은 6680의 형번을 갖고 있고 골드핀을 가진 CBS용 고급관에는 7730, 암페렉스에서 만든 프리미엄 관에는 7316이라는 형번이 붙어 있다.
영국 GEC(미국의 GE가 아니다)의 B309도 12AU7의 동등관이다. 다양한 제품들이 생산되었고 현재에도 생산되고 있는 상황은 위 12AX7, 12AT7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암페렉스 7316은 12AU7을 오디오에 적합하도록 더욱 세밀하게 다음은 고신뢰관이다.
5. 숨어 있는 보석과도 같은 12AY7
12A*7
계열에서 숨어 있는 보석과도 같은 진공관이다. 12AT7과 유사한 특성에 증폭도는 대략 40정도다. 그런데 12AT7이 TV나 FM방송의 고주파 회로를 겨냥해서 만들어진 데 반해, 12AY7은 하이파이 프리앰프에 사용될 것을 전제로 개발된 저잡음관이다.
즉 태생적으로 마이크로포닉 노이즈도 작고 출력 임피던스도 낮기 때문에 오디오에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성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증폭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2AT7 자리에 12AY7을 꼽아보면 부드럽고 풍성한 중역이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특히 최근일수록) 12AY7을 앰프에 사용하는 메이커는 12AT7을 사용하는 메이커보다 훨씬 드물다. 특히 국내에서 12AY7을 사용하는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미국 GE의 6072A. JAN은 ‘Joint Army & Navy’의 약어로 미육해군에 납품된 군용을 의미한다. 화이트 로고가 먼저 생산되었고 후에 그린 로고가 대량 생산되었는데 화이트 로고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텔레풍켄은 12AY7을 따로 제작하지 않았으며, 고신뢰관으로는 군용 6072를 꼽을 수 있다. 6072는 RCA 제품의 인기가 높고,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미국 GE의 제품은 표면 글자가 흰색인 것(화이트 로고)이 녹색인 것(그린 로고)보다 더 높이 평가된다.
한편 영국 브리마의 CV4068은 군용관으로 12AU7과 12AY7 사이의 증폭도를 갖고 있는데, 12AU7이나 12AY7의 고신뢰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출처 및 참고]
- http://analogstyle.co.kr/archives/4257